우생학은 왜 나쁜가

  • 2025-09-08
  • 저자: AK

책을 읽다가 트랜스휴머니즘우생학에서 파생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참고: 트랜스휴머니즘과 우생학.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계하게 되었는데, 경계심을 구체화하기 위해 우생학이 왜 나쁜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게 되었다.

우생학이 나쁘다는 건 당연히 알겠는데(내 도덕 직관으로도 나쁘게 느껴지고, 주변 모두가 나쁘다고 하고, 온갖 글과 책에서 나쁘다고 함), 정작 왜 나쁜건지에 대해 스스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생학이 왜 나쁜지를 잘 이해하면, 일견 우생학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생학적인 개념이나 시도들을 더 잘 발견하고 경계할 수 있게 되리라고 믿는다.

우생학에서 파생되었으면 나쁜가

아래와 같은 논리적 오류를 기원론적 오류(fallacy of origins)라고 부른다.

  1. X는 나쁘다.
  2. Y는 X에서 유래했다.
  3. 따라서 Y는 나쁘다.

트랜스휴머니즘이 우생학에서 유래했으니 트랜스휴머니즘은 무조건 나쁘다는 추론도 마찬가지로 기원론적 오류다. 우생학이 왜 나쁜지, 구체적으로 트랜스휴머니즘(또는 우생학과 관련된 임의의 개념)의 어떤 측면을 경계해야 하는지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논리가 필요하다.

어떤 기준에 인간을 맞추기 위해 비자연적 수단을 쓰면 나쁜가

“어떤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인간을 맞추기 위해 비자연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나쁘다”를 기준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하지만 이 기준으로는 다음 두 사례를 구분할 수 없다.

  • 시력을 개선하려고 안경을 쓴다.
  • “국민 혈통의 순수성”을 개선하려고 일부 국민에게 강제불임 시술을 한다.

내 시력을 개선하려고 내가 안경을 쓰는 게 왜 문제인지 살펴보자.

  • “어떤 기준을 세우고”: 영화관, 강의실, TV와 쇼파의 거리를 감안한 거실 크기의 설계 등은 모두 시력에 대한 어떠한 기준(정상적인 시력의 범주)을 가정한다.
  • 인간을 맞추기 위해”: 비용이나 효율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인간을 환경에 맞추는 게 아니라 환경을 인간에 맞출 방법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시력에 따라 설계된 상영관들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면 안경을 쓰지 않고도 영화 관람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비용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문제가 있다. 강의실 등도 마찬가지.
  • 비자연적 수단을 사용한다”: 기준이 있고 환경이 그 기준에 맞춰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시력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수술을 하거나 안경을 맞추는 등 비자연적인 수단을 써야 다른 사람과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위 기준에 따르면 시력을 개선하려고 안경을 써야하는 상황은 나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생학과 똑같이 나쁘다는 결론은 대단히 이상하다.

다른 기준들

위 결론(안경 착용이나 우생학적 인종청소나 비슷비슷하게 나쁘다)은 내 도덕 직관에 크게 위배된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 같다. 반성적 평형에 이르기 위해 몇 가지 항목들을 추가해보자.

  • “개선” 혹은 “좋음”의 기준이 얼마나 합리적한가?
  • “개선” 혹은 “좋음”의 기준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의하나? 다원적 기준을 얼마나 허용하나?
  • 기준 수용 여부에 대한 개인의 자율성이 얼마나 보장되나? 국가 권력이 강제하나? 암묵적이거나 사회적인 강요의 정도가 얼마나 강한가?
  • 인간을 오로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정도, 즉 대상화하는 경향이 얼마나 강한가?
  • (본인이 결과주의자라면) 선한 결과에 이르는 경향이 있는가?

각각의 항목은 이분법적인 예-아니오로 구분하기보다는 스펙트럼으로 보는 게 좋겠다. 그리고 특정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통과”라고 여기기보다는 전체 항목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위 항목들로 우생학적 인종청소와 안경 착용 사례를 비교해보면 대부분의 항목에서 우생학적 인종청소가 안경 착용에 비해 월등히 부정적임을 알 수 있다. 우생학적 인종청소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 “순수 혈통”이라는 기준은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다른 정치경제적 목적(재산 몰수, 강제 노역, 점령지 약탈 등)을 포장하기 위한 좋은 핑계이기도 했다.
  • 그 엉터리 기준 조차도 국가 권력이 일률적으로 정했으며 다른 기준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중의 지지가 있기도 했으나 정치적 목적에 의한 선동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 이렇게 정해진 기준은 국가에 의해 강제로 “집행”된다.
  • 개별 인간을 어떤 특성의 집합으로 환원할 뿐 아니라 개인의 자율이나 존엄을 박탈한다.
  • 우생학적 인종청소는 인류 역사에서 손꼽을 만큼 중대하고 악한 결과를 초래했다.

안경 착용도 모든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우생학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자연적 수단은 좋고 비자연적 수단은 나쁜가

한편, 유전자 조작을 하거나 뇌 안에 뭘 심는 등의 방법에 의한 개입과 안경을 쓰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등 방법에 의한 개입을 구분하려는 경향(전자는 위험하고 후자는 괜찮다)이 있는데, 이는 본질주의 또는 자연주의적 오류일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의 트랜스휴머니즘 비판은 논리적으로 취약하다.

  • 본질주의: 종이, 계산기, 스마트폰 등을 써서 능력을 증강하는 방법과 유전자 조작 또는 신경칩 이식으로 능력을 증강하는 방법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관점은 두개골 또는 피부를 기준으로 그 경계 안은 “본질적인 무언가”라고 본다는 점에서 본질주의적인 면이 있다. (확장된 인지체화된 인지의 관점)
  • 자연주의적 오류: 종이, 계산기, 스마트폰 등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전통적인 도구는 “자연스럽지만” 유전자 조작이나 신경칩 이식과 같은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한 뒤, “자연스러운 건 좋고 자연스럽지 않은 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오로지 사실 명제(“X는 자연스럽다”)만으로부터 가치 명제(“X는 좋다”)를 유도하는 건 논리적 오류이다.

다만 경계의 방향(?)이 중요한데, “유전자 조작도 안경 맞추는 정도로 덜 경계하자”는 말이 아니라 “안경 맞추기라고 덮어놓고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방향이면 좋겠다.

무엇이 왜 나쁜지를 정교하게 따져보는 이유는 “따져보니 X는 나쁘지 않으니 괜찮겠다”는 식으로 어떤 개념이나 시도를 정당화하기보다, “X는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따져보니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는 식으로 어떤 개념이나 시도에서 경계할 점을 찾고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생학을 논하는 맥락에서는 그렇다.

트랜스휴머니즘

그래서 트랜스휴머니즘은 나쁜가? 나쁘다면 왜 나쁜가?

나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으므로 판단을 보류하려고 한다(참고: 의견 형성을 늦추기). 우생학에서 파생된 사상이라고 해서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기원론적 오류) 경계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생각해 본 기준들이 트랜스휴머니즘을 평가할 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주제를 알기 전에 평가 기준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프로그래머가 기능을 구현하기 전에 해당 기능에 대한 검증 방법을 마련해 두는 실천법(테스트 주도 개발)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